아르튀르 오네게르

작곡가

중세 다성음악에서 현대적인 폴리리듬과 다조성, 재즈 음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 200여 곡을 남긴 아르튀르 오네게르는 그 세대의 대표적인 다작 작곡가로 손꼽힌다. 이미 2차 세계 대전 전부터 그가 작곡한 대규모의 합창곡과 발레, 영화 음악, 라디오 음악은 큰 반향을 불러왔다. 오네게르는 1938년에 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0년 뒤에는 취리히 대학의 명예박사가 되었다.

1892년생인 아르튀르 오네게르는 가족과 함께 프랑스 대서양 연안의 르아브르에 정착한 스위스 커피 수입업자의 아들이었다. 일찍부터 로베르 샤를 마르탱에게 바이올린 수업을 받았으며 1909~1911년에는 취리히 콘서바토리에서 학업을 이어갔고 이후 샤를 마리 비도르와 뱅상 댕디가 교사로 있는 파리 콘서바토리로 옮겼다. 젊은 작곡가는 곧 세르게이 댜길레프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를 비롯해 혁신적인 음악계가 자리 잡은 센 강변의 대도시에서 다리우스 미요, 프랑시스 풀랑크와 함께 6인조의 일원이 되었다. 오네게르는 이 그룹과 그들의 견해에 잠시 동조하다가 이내 자기 길을 가기 시작했다. 1921년에 오라토리오 〈다윗 왕〉을 통해 처음으로 큰 성공을 맛보았고 곧이어 급행열차의 빠른 운행을 음악적으로 재현한 관현악 작품 〈퍼시픽 2.3.1〉로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다 루빈시테인(극적 오라토리오 〈화형대의 잔다르크〉를 의뢰하기도 함)을 위해 작곡한 발레 음악도 그렇고 1929/30년에 쓴 오페레타 〈포솔 왕의 모험〉도 500회 이상 매진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에서 독일 점령기를 보낸 후 오네게르는 1947년에 북미와 남미로 콘서트 투어를 떠났는데, 협심증을 앓던 작곡가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결국 1955년 11월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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